모티머 J. 애들러, 찰스 밴 도렌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How to Read a Book) 표지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일주일에 한 권, 1년에 52권이었다. 빨리 많이 읽는 것을 잘 읽는 것이라 여겼고, 그렇게 쌓이는 권수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다. “닥치는 대로 읽는 것과 잘 읽지 않는 것은 비슷하다.” 모티머 애들러와 찰스 밴 도렌이 쓴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원제 How to Read a Book)이다. 읽고 반성했다. 1년에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는 쪽이 낫다는 데로 생각이 바뀌었다.

책 본문 중 "닥치는 대로 읽는 것과 잘 읽지 않는 것은 비슷하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은 페이지

이 책을 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독서 기록 앱 “리독”을 만들기 시작한 참이라 제품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 프로젝트는 지금 중단했다. 결국 이 책에서 얻은 건 앱에 넣을 기능이 아니라 내가 책을 어떻게 읽고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책이 말하는 네 가지 수준

이 책은 제대로 된 독서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설명한 다음, 독서를 네 수준으로 나눠 각 수준에 오르는 방법을 안내하는 실용서다.

1수준 기초적 읽기는 말 그대로 유치원에서 초등 저학년 때 훈련하는 읽기 능력이다. 단어와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단계다.

2수준 살펴보기는 “이 책은 무엇에 관해 썼는가?”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둘 다 잘해야 한다. “체계적으로 훑어보기”에는 속표지와 머리말 보기, 목차 보기, 찾아보기 보기, 표지의 광고글 보기, 논점의 중심이 될 만한 장 찾기, 책장을 띄엄띄엄 뒤적이며 골라 읽기가 있다. “겉만 핥아보기”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멈추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는 것이다. 이 둘로 책이 무엇에 관해 썼는지 파악하고, 다음 수준으로 다시 읽을 만한 책인지 판단한다.

3수준 분석하며 읽기의 본질은 네 가지 질문을 던지며 읽는 것이다.

  1. 전반적으로 무엇에 관한 글인가?
  2. 무엇을 어떻게 자세하게 다루는가?
  3. 전반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볼 때 그 글이 맞는가?
  4. 의의는 무엇인가?

책은 이 질문에 답하는 절차를 세 단계, 열한 개 원칙으로 정리한다. 제1단계는 무엇에 관한 책인지 알아내기, 제2단계는 내용 해석하기, 제3단계는 지식을 잘 전달하는지 비평하기다. 앞의 두 단계가 질문 1과 2에, 마지막 단계가 질문 3과 4에 걸린다.

나에게 남은 건 제3단계였다. 비평에도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는 것 — 완전히 파악하기 전에는 비평하지 않을 것, 트집이 아니라 조리 있게 비판할 것, 지식 차원의 비평인지 개인 견해인지 구분하고 근거를 댈 것. 그리고 비평은 네 가지 기준으로만 한다. 저자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 잘못 알고 있는 부분, 논리적이지 못한 부분, 분석이 불완전한 부분.

분석하며 읽기 3단계 11개 원칙이 정리된 페이지

분석하며 읽기 3단계 11개 원칙 전문

제1단계 — 무엇에 관한 책인지 알아낸다

  1. 책을 종류와 주제에 따라 분류하라.
  2. 전체 내용이 무엇에 관한 글인지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라.
  3. 주요 부분을 찾아 어떤 순서에 따라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하라.
  4. 저자가 풀어가려는 문제를 분명하게 찾아내라.

제2단계 — 내용을 해석한다

  1. 중요한 단어를 저자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파악하라.
  2. 가장 중요한 문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주요 명제를 찾아라.
  3. 저자의 논증을 문장과 연관 속에서 구성해 보거나 찾아보라.
  4. 저자가 풀어낸 문제와 그렇지 못한 문제를 구분하고, 풀지 못한 문제를 저자도 아는지 파악하라.

제3단계 — 지식을 잘 전달하는지 비평한다

지성인으로서의 에티켓

  1. 책을 완전히 파악하고 해석하기 전까지 비평하지 않는다.
  2. 반대한다고 트집을 잡거나 따지지 말고 조리 있게 비판하라.
  3. 지식 차원의 비평인지 개인 견해인지 명확히 구분하고, 근거를 제시하라.

비평할 내용의 기준 (원칙 11개에는 포함되지 않는 별도 목록)

  1. 저자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제시한다.
  2.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제시한다.
  3. 저자가 논리적이지 못한 부분을 제시한다.
  4. 저자가 분석한 내용이나 설명이 불완전한 부분을 제시한다.

4수준으로 넘어가기 전에 책은 분야별 읽기법을 따로 다룬다. 실용서, 문학, 소설, 희곡, 시, 역사, 과학, 수학, 철학, 사회과학. 대원칙은 같아도 분야마다 적용해야 할 원칙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았다.

4수준 통합적 읽기는 앞의 세 수준을 모두 써서 하나의 주제를 여러 책으로 읽는 방법이다. 이해한 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여러 책에 2수준 살펴보기를 적용해 대강을 파악한다. 관심 주제와 관련된 문단을 먼저 읽으며 저자들이 쓰는 용어를 모으고 뜻을 정한다. 그다음 도움이 될 책을 간추려 분석적으로 읽고, 질문을 명확히 하고, 저자들 사이의 쟁점을 규정하고, 논의를 분석한다. 이 부분은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 연습해보고 이 책도 몇 번 다시 읽어야겠다.

나의 수준은?

돌아보니 나는 3수준의 제2단계까지만 하고 있었다. 책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건 곧잘 했지만, 비평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3단계의 원칙을 무시한 채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리한 것 자체가 네 번째 질문 “의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내 답이다. 이 책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 있었는지 이름을 붙여줬다. 막연히 “독서를 더 잘하고 싶다”였던 것이 “3단계 비평을 못 한다”로 바뀌었다. 고칠 것이 특정되면 연습할 수 있다.

이 책은 비평하지 않기로 했다

책은 3단계에서 비평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 책을 비평하지 않겠다. 첫 번째 에티켓이 “책을 완전히 파악하고 해석하기 전까지 비평하지 않는다”인데 나는 아직 그 조건을 못 채웠다. 특히 4수준 통합적 읽기는 앞서 적었듯 이해가 덜 됐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판단을 보류하고 먼저 실천해보는 것이다.

원칙을 하나하나 지키며 읽는 게 현실적이냐는 물음은 나올 만하다. 책은 스키에 비유해 답한다. 처음 배울 때는 무릎 각도, 시선, 허리, 발 모양을 일일이 신경 쓰지만,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게 될 때 비로소 스키를 탈 줄 아는 것이다. 독서도 같다고 한다. 처음에는 규칙을 하나씩 붙들고 연습하지만 익숙해지면 의식하지 않고도 그렇게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 대답이 납득이 갔다.

개별 동작을 잊어버리려면 일단 하나씩 따로 배워야 한다는 스키 비유가 실린 페이지

앞으로

책 끝에는 각 수준을 연습할 수 있는 문제가 실려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한 뒤 우선 분야별 읽기법을 다섯 권에 적용해본다. 소설, 과학, 철학, 역사, 사회과학 각 한 권씩. 그다음 주제를 하나 정해 두 권 이상을 통합적으로 읽어본다. 올해 안에 3수준을 몸에 붙이고 4수준을 몇 번 연습해보는 것이 목표다. 권수는 이제 세지 않는다.

잘 읽는 것, 즉 능동적으로 읽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살아 있게 하고 성장하도록 만든다고 적힌 페이지